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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동 그 후

2006. 12. 30. 00:19 from 하루가..

25일 크리스마스날 질렀던 출동이 이제야 끝나고 복귀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4박5일짜리 출동. 처음에 갔을때 심하게 어설픈 경력운용에 어이가 없더니 마지막 날까지 염장을 질렀다. 이렇게 큰 상황이 있을리 만무한 경주서의 경력운용은 정말 고달팠다. 첫날은 작전 실패의 연속. 타이밍이 늦어 제대로 작전은 해보지도 못했고, 불법 시위 용품이 난무하는 그야말로 폭동에 무법천지. 세상에 각목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신나랑 똥물, 경운기 돌진은 대체 뭐냐고.. 거기에 배치 10분전에 근무지를 무전으로 살짝 불러주는 센스까지. 보안유지 따위의 이유라면 침을 퉤 뱉어주마.


사용자 삽입 이미지

<25일 경운기 돌진 상황 - 사진에 있는 경력의 80%는 우리 중대>


이번에 갔던 출동은 경주시로 이전하기로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본사가 처음에 계획했던 방폐장 근처 동경주 쪽이 아니라 경주시내로 간다는 정보를 입수한 지역주민의 반발 때문. 애초에 지역주민들에게 한수원 본사가 이전하는 조건으로 방폐장 유치에 대한 주민투표를 찬성하게 했던 경주시가 한수원 본사의 부담과 시내 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시내에 한수원 본사를 이전하겠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 당연히 지역주민 입장에선 배신감과 어이없음에 반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임을 알기에, 상황중에 뺨을 맞아 안경이 날아가고 신나를 맞고 쌍욕을 들어가면서도 '인내진압'을 해야했다. 게다가 지역이 워낙에 시골인 관계로 주민의 연령대가 무척 높아 최악의 경우 전임 본청장이셨던 허준영씨를 낙마하게 했던 사망사고도 미연에 방지해야 했다. 2003~4년에 있었던 부안 사태처럼 상황이 돌아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은 지역주민들보다도 우리가 더 하지 않았나 싶다.

지역 이기주의로 몰아부치기엔 이번 일은 행정 시스템의 오류가 한 몫을 했다. 대체 주민투표까지 그렇게 해놓고서는 이제와서 또 말바꾸기를 하는지. 상황에서 들리는 말로는 당시 투표할 때도 부정선거였다느니 하는 얘기가 있었는데, 정말 그렇다면 그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지금 내 입장에서야 뭐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10여 년전 이건희 회장이 얘기했던 "기업은 이류, 행정은 삼류"라는 말이 다시 한번 와닿는 출동이었다.

정말 한가지 바라고 싶은 것은 제발 불법,폭력 시위가 하루 빨리 사라졌으면 하는 것. 우리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아프지 않게. 맨날 법집행을 엄정히 하겠다느니, 일벌백계라느니 하는 따위의 수사적 이야기만 나불대지 말고 직접 보여주란 말이다. 윗사람들아.

Posted by 원준 :

근무

2006. 12. 18. 22:32 from 하루가..

05. 5. 24. 502전경대에 발령받은 후 1년은 남들과 다름없는 정상적인 근무패턴을 유지하고 있었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주5일 근무제. 그러나 이름만 주5일 근무제지 사실은 주말 휴식이 거의 보장되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주말에 부대가 출동가게 되면 누군가 한 사람 부대를 지켜야 하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결국 부대장인 내가 쭐래쭐래 부대로 출근해서는 타임킬링을 하곤 했다. (하고자하는 얘기랑 조금 벗어나는 얘기긴 하지만, 그 많던 여유시간을 30%만 활용했어도 지금 이렇게 또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텐데 싶다)

그래서 부대장에서 무척이나 벗어나고 싶어했다. 소대장으로 보직을 옮기면 무언가 무척 많이 바뀔줄 알았던 거지. 거의 매일 부대를 벗어날 여유가 없는 부대장과는 달리 소대장은 근무형태가 8일 주기로 3일 연짱 휴식도 있고 왠지 여유로워 보였기 때문. 게다가 부대장은 각종 부책에 비밀문서, 각종 공문과 부대 행사 등에 신경써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년 22기의 누군가가 아직 발령받기 조금전의 시점까지 대장님은 부대장 연임 원칙을 고수하고 계셨고, 그만큼 소대장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커지기만 했다. 단순히 무언가를 못하게 하면 괜히 더 생각나고 하고 싶어지는 어린애같은 마음이었을까;; 끝내 소대장으로의 보직이동을 허락치 않으실 것 같던 대장님께서 형동이가 발령받아 오던 날 아침 출근길에 문자를 보내셨다. 전날 저녁 늦게까지 대장님의 허락이 없어 반쯤 포기했던 소대장의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고, 공문은 순식간에 만들어져 대장님의 결재만 기다리는 상태가 되었다.

이제 만 7개월이 차가는 시점이다. 소대장으로 자리를 옮긴 시점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난 출동은 아직까지도 사그러들 줄을 모른다. 여름과 겨울 출동의 빈도가 낮은 계절이나 봄, 가을의 출동성황기가 따로 없이 전국은 시위의 열풍이다. 한미FTA, 미군기지 이전문제, 화물연대, 덤프연대, 약방의 감초도 아니고 약방주인 격이나 다름없이 민원성 집회시위까지 주도하는 민주노총. 환장할 노릇이다..

그나마 우리 부대 기간요원들은 좀 나은 편이다. 당 비 봉 비 당 비 비 비 의 8일 주기로 돌아가기 때문에 사실 근무표상으론 8일에 3일 겨우 근무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씩이나마 기대마 3대가 동시에 나가야 할 경우엔 당직 다음 비번자 두명 중 한 사람이 동원돼야 해서 이것도 약간은 불안정한 근무긴 하다.

'당'의 경우엔 빼도박도 못하고 부대 당직근무를 서는 것이고,
'봉'은 봉하마을이라고 노무현 대통령 생가와 선영이 있는 마을에 있는 초소 근무를 서는 거다. 통상 봉하선영이라 칭하는데 대통령의 선영이 있는 곳이다. 친구들에게 나 여기 근무중이야 라고 할 때면 경찰이 그런데도 지키냐고 이야기하는데 회사 입장에선 아무래도 민감한 부분인가 보다. 대다수의 일반인은 이해하기 힘든 근무다;; 사실 소수의 경찰관도 이해하지 못한는 근무일지도 모른다ㅋ

11월말부터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3일 연짱근무가 잦아졌다. 11월 마지막 주 당당당을 시작으로 당당봉, 봉당당까지.. 체력이 약해진 탓인지 의지가 약해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직 하루만 서도 힘들어서 다음날 낮잠을 거의 두세시간을 자버리는데 3일 연짱을 서고 나면 죽을 맛이다.
오늘도 3일 연짱 근무 다음날.

하지만 이런 이야기따위 12월 내내 부대정비나 부대 휴무 한번 못받고 매일 출동이나 수색, 훈련을 나가는 아이들에겐 미안하기만 할 뿐이다;; 조만간 회식이라도 한번 시켜줘야 겠다

Posted by 원준 :